우리가 잃어버린 10초, 그리고 다시 시작된 전쟁
지금 퀵서비스 판은 0.1초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 ‘전투콜’의 시대다. 오더가 뜨자마자 사라지는 이 위험한 시스템 속에서, 기사들은 주행 중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겐 ‘10초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전장치가 해제되고 다시 야생의 전투콜로 돌아가게 된 데에는, 변화하는 기술 환경과 우리들의 ‘집단적 선택’이 있었다.
#1. 퀵라이더연대가 만든 ‘10초의 평화’
오래전, 퀵서비스 기사들은 오더를 잡기 위해 목숨 걸고 폰을 눌러야 했다. 주행 중 휴대폰 조작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했다. 이에 ‘퀵라이더연대’ 카페와 기사들이 합심하여 본사에 강력히 요청했고, 그 결과 ‘가배차 10초 룰’이라는 소중한 시스템을 얻어냈다.
오더가 들어오면 10초 동안은 기사가 내용을 확인하고 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이는 순정앱이든 지지기든 공평하게 적용되던 룰이었다.
#2. 균열의 시작: ‘순정앱 우선’의 의혹
사건의 발단은 내가 ‘인성 순정앱’ 하나만 쓰던 시기였다. 모두가 똑같이 ‘10초 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는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었다.
나는 일을 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남들은 못 봤다는 오더가 내 폰에는 먼저 떠서, 여유롭게 10초 카운트를 세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우리끼리는 ‘순정앱 사용자에게 데이터를 미세하게 먼저 보내주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하게 되었다.
서버에 신규 오더가 발생하면, 순정앱 사용자에게 데이터가 더 빨리 도달하는 듯한 현상이 반복됐다.
순정앱 기사의 폰에 가배차 화면이 뜨고 10초 카운트가 도는 동안, 지지기 사용자들의 폰에는 아직 데이터가 도달하지 않았거나 락(Lock)이 걸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즉, 순정앱 사용자가 그 ‘10초의 권한’을 독점하는 듯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3. 유튜브와 입소문, 거대한 이동의 시작
나는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지지기 다 필요 없어요. 순정앱이 오더를 더 잘 잡아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눈치 빠른 기사들이 이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유튜브에 ‘지지기 vs 순정앱 속도 비교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많은 기사들에게 퍼졌다. 기사들은 앞다퉈 지지기를 해지하고 순정앱으로 갈아탔다. 기사 입장에서는 비용도 줄이고 오더도 잘 잡히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4. 변화의 대가: 수익 감소와 ‘배차 지연’의 딜레마
기사들의 이러한 이동은 업계에 두 가지 큰 파장을 불러왔다.
첫째는 회사의 수익 구조 악화였다. 과거 기사 한 명이 여러 개의 계정을 쓰던 시절에서, 순정앱 하나만 쓰는 단일 계정 시대로 바뀌자 회사의 매출이 타격을 입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둘째는 퀵사무실의 ‘배차 지연’ 불만이었다. 10초 가배차 시스템은 기사 한 명에게 10초씩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만약 앞선 기사들이 오더를 잡지 않고 넘기면, 오더 하나가 기사들 사이를 빙빙 도느라 10분 이상 배차가 안 되는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빠른 배차를 생명으로 하는 퀵사무실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가고, 이는 곧 플랫폼사(인성데이타)에 대한 항의로 이어졌을 것이다. 결국 회사는 칼을 빼 들었다. 수익 감소와 배차 지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기사들이 그토록 힘들게 얻어냈던 ‘10초 가배차(생각할 시간)’ 시스템 자체를 아예 폐지해 버린 것이다.
#5. 다시, 원시의 전쟁터로
이제 우선권은 사라졌다. 생각할 시간도 사라졌다. 오더는 시장 바닥에 뿌려진 동전처럼 동시에 나타나고, 누구든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했던 10초의 평화를 반납하고, 다시 목숨을 건 ‘전투콜’의 시대로 회귀했다.
불안해진 기사들은 다시 지지기를 설치하고, 여러 개의 계정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의 수익 구조는 예전으로 돌아갔을지 모르지만, 도로 위의 위험은 배가 되었다.
내가 던진 작은 돌멩이, 그리고 입소문을 타고 일어난 거대한 파도. 우리가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 선택한 변화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사들의 절실한 요구로 만들어진 안전장치조차 비즈니스 논리 앞에서는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공정한 경쟁과 최소한의 안전이었지만, 비즈니스 논리 앞에서 그 소중한 ‘10초’는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렸다.”
이 사건은 시스템의 변화가 현장 기사들의 삶과 안전을 어떻게 뒤바꿔 놓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역사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