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포대교 위, 끊어진 짐받이와 춤추는 오토바이
#1. 원단의 무게, 삶의 무게
20년 전, 퀵서비스 시장의 ‘꽃’은 단연 원단과 나염 배달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서류가 주를 이루는 지금과는 달랐다. 당시 종로, 동대문 일대는 대한민국 섬유 산업의 심장과도 같았고, 우리는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적혈구였다.
원단 배달은 요령이 필요했다. 짐받이 뒤에 ‘뽈대’라고 부르는 높다란 지지대를 세우고, 사람 키만 한 원통형 원단을 세 개씩 꽂고 달렸다. 무게중심이 잔뜩 뒤로 쏠린 채 달리는 오토바이. 그 위태로운 균형 감각이 곧 기사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 균형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2.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날따라 유독 무거운 짐이 걸렸다. 평범한 원단이 아니었다. 아주 단단하게 압축되어 말린, 쇠몽둥이처럼 묵직한 원단이었다. 짐받이에 싣는 순간 쇳덩이를 얹은 듯 오토바이가 휘청했다.
‘이거 좀 위험한데?’
불안함이 스쳤지만, 배달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억지로 뽈대에 짐을 고정하고 안산에서 서울로 향했다. 오토바이 엔진이 힘겨워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3. 마포대교 한복판, 죽음의 왈츠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강바람이 거세게 부는 마포대교를 건너던 중이었다.
“뚝!”
둔탁하면서도 날카로운 파열음이 헬멧을 뚫고 들어왔다. 등 뒤에서 끔찍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 무거운 원단을 버티던 짐받이의 한쪽 용접 부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다.
순간, 오토바이가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뒤에 실린 무거운 원단이 덜렁거리며 좌우로 흔들리자, 앞바퀴의 조향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핸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좌우로 요동쳤다. 시속 60km로 달리는 다리 위에서, 나는 로데오 말 위에 올라탄 카우보이 꼴이 되었다.
#4.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다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고, 핸들은 통제 불능이었다. 넘어지면 뒤차에 치일 것이 뻔했고, 중심을 잃으면 다리 난간을 들이받을 것 같았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공포보다 먼저 든 생각은 분노였다.
‘아, 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다.’
정말로 오토바이를 세우고 저 무거운 원단을 한강 물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먹고살겠다고 이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 내가 처량했고, 고작 쇳덩이 하나 끊어진 것에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했다. 아니, 멈추면 쓰러질 것 같아서 악착같이 핸들을 붙잡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속도를 아주 천천히 줄이며, 기어가듯 갓길로 빠져나왔다.
#5. 쇠에 새긴 흉터
어떻게 동대문까지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겨우겨우 물건을 내려주고, 도망치듯 근처 오토바이 센터로 향했다.
“이거 큰일 날 뻔했네. 짐대가 아예 나갔어.”
사장님은 혀를 차며 끊어진 부위를 다시 용접해주셨다. 시퍼런 불꽃이 튀고, 쇳물로 틈이 메워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다시 붙은 짐받이에는 울퉁불퉁한 용접 자국이 남았다. 그 흉터가 꼭 그날 내 마음에 남은 공포의 자국 같았다. 수리를 마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짐받이는 튼튼해졌지만, 마포대교 위에서의 그 아찔한 진동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손끝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