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지지기' 20년 비사: PDA부터 멀티앱까지
안녕하세요. 도로 위를 달리는 ‘퀵서비스 기사’입니다.
오늘 제가 풀어볼 이야기는 우리 퀵서비스 기사들에게는 ‘전설’이자 ‘애증’인 존재, 바로 그 ‘지지기’에 대한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0.1초에 생계가 오가는 치열한 세계의 이야기죠.
이건 단순히 ‘오더 빨리 잡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과의 전쟁, 그리고 하루하루를 절박하게 살아온 우리네 기사들의 생존기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이 바닥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것들을 바탕으로, 그 숨겨진 역사의 연대기를 기록해 봅니다.
[안내 및 면책 조항] 본 글은 대한민국 퀵서비스 업계의 기술적 변천사를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내용은 필자의 현장 경험과 업계의 통상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는 특정 불법 프로그램의 사용을 조장하지 않으며, 언급된 특정 기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아울러 현재 운영 중인 특정 커뮤니티나 기업과는 무관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0. 지지기 이전: 사무실 순번과 무전기의 시대
‘지지기’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아날로그 시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퀵서비스 초창기에는 당연히 ‘어플’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퀵사무실과 그곳에 소속된 기사들이 전부였죠.
일하는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기사들은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도착한 순서대로 칠판에 자신의 이름이나 번호를 걸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그렇게 대기 중인 기사에게 오더 몇 건을 묶어 전달했고, 배달을 마친 기사는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 순번을 걸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사무실 한쪽에는 기사들이 쉴 수 있는 대기 장소가 항상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경쟁의 서막은 ‘무전기’가 열었습니다.
무전기가 도입되면서 기사들은 더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거나 대기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사무실에서 무전으로 콜을 띄우면, 가장 먼저 응답하는 기사가 배차를 받는 방식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떻게 하면 남보다 먼저 콜을 잡을 수 있을까?’하는 원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곧 ‘편법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기사들은 콜을 먼저 잡기 위해 자신의 무전기를 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송신 버튼을 더 민감하게 만들거나, 전파가 잘 터지는 특정 장소에서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무전기의 출력을 불법으로 증폭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아날로그 시대의 기술 경쟁이야말로, 훗날 ‘지지기’라는 디지털 괴물이 태어날 정신적 토양이 되었습니다.
1. 태동기: PDA와 ‘투터치’의 낭만 (2000년대 후반)
요즘 젊은 기사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산업용 PDA라는 벽돌만 한 기계로 일했습니다. ‘블루버드 BM-150’이나 ‘쟈칼(Jackal)’ 같은 단말기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거의 100만 원 돈 하던 이 귀하신 몸을 허리춤에 차고 다녔죠.
운영체제인 ‘윈도우 CE’는 툭하면 멈추고 오류가 났지만, 그때는 나름의 ‘손맛’이라는 게 있었죠. 인성, 로지, 손자, 예지 등 여러 프로그램사가 난립하던,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지지기’의 어원: 대리운전 업계에서 화면 좌표를 미친 듯이 ‘지지는(누르는)’ 매크로 행위에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이 퀵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기술 경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배차는 단순했습니다. 리스트에서 오더를 고르고, 상세 화면에서 ‘예’를 누르는 ‘투터치’ 방식이었죠. 이때까지만 해도 오로지 손가락 피지컬 싸움이었습니다.
2. 격변기: ‘옴니아’의 시대와 지지기의 탄생 (2010년대 초)
삼성에서 옴니아1, 옴니아2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시 양대 산맥이던 아이폰에는 퀵 프로그램사들이 앱을 만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퀵 시장은 옴니아 천하가 되었습니다.
다만 옴니아의 운영체제(OS)는 PDA 시절과 같은 ‘윈도우 CE’ 기반이라 불안정했고, 자주 멈추기 일쑤였습니다. 그럼에도 비싼 산업용 PDA를 따로 살 필요 없이 전화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혁신이었습니다. “폰과 오토바이만 있으면 누구나 퀵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게 바로 이 시기입니다.
당시 인성, 로지, 손자, 예지 등 여러 프로그램사 중 가장 많은 퀵 사무실과 연계된 곳은 단연 ‘인성데이타’였습니다. 가입 사무실이 늘어나자 인성 프로그램은 ‘인성1’과 ‘인성2’로 분할되었고, 기사들은 두 프로그램을 모두 보기 위해 스마트폰 2대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하나의 폰에 두 앱을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 옴니아 시절의 인성 프로그램 구동 화면. 당시엔 기기당 하나의 프로그램만 설치 가능해 인성1, 2를 모두 보려면 폰 2대가 필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지기’가 태동했습니다.
다른 기사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더를 잡기 위해, 기사들은 암암리에 지지기 제작자를 찾아가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배차 방식은 ‘투터치(리스트 선택-상세화면 수락)’였는데, 초기 지지기는 이 2단계 과정을 1단계로 줄여주는 ‘원터치’ 자동화 기능이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을 앞당기는 기술 경쟁의 서막이었죠.
▲ (위) 로지 메인 리스트 화면, (아래) 리스트 선택 시 뜨는 배차 팝업. 오더를 잡기 위해선 리스트를 찍고, 팝업에서 다시 ‘배차’를 누르는 0.5초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 과정을 없앤 것이 ‘원터치 지지기’의 시작이다.
이러한 지지기 설치의 성지는 단연 신논현역(교보타워 사거리) 근처였습니다. 특히 ‘달빛마트’라는 전설적인 이름이 이때 등장합니다. 이름은 ‘마트’지만 번듯한 매장이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면 승합차나 천막에서 은밀하게 지지기를 설치해주던 업자들을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단순 매크로를 넘어 폰 OS 자체를 개조한 ‘커스텀 롬’ 폰이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부 얼리어답터 기사들은 폰 2대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 옴니아 폰에서 대리운전용 툴인 ‘호박’을 응용해 인성(위)과 로지(아래)를 강제로 분할한 모습. 잦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폰 하나로 해결하려는 기사들의 열망이 엿보인다.
3. 과도기 1: 소수만 알았던 비밀, ‘복제폰’
본격적인 안드로이드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 알음알음 전해지던 ‘복제폰(나밍)’이라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모든 기사가 쓰던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기사’들이 몰래 쓰던 비기(비밀 기술)였죠.
▲ 전설의 ‘이동식 관제탑’. 오토바이 한 대에 스마트폰 7대를 장착한 모습. 이 기괴한 세팅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보통 기사들은 저렇게 폰을 7대나 달고 다니는 걸 보면 혀를 내둘렀습니다. “아니, 저 많은 핸드폰 요금이랑 프로그램비는 어떻게 감당해요?”
하지만 정작 주인은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실 돈은 거의 들지 않았거든요. 이것이 가능했던 건 통신사의 허점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메인 폰 유심을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 받으면, 죽은 유심이 꽂힌 공기계는 통신은 안 되지만 ‘와이파이’ 상에서는 여전히 내 번호로 인식되는 점을 노린 것이죠.
이런 식으로 공기계 5~7대를 핫스팟으로 연결해 인성 앱을 동시에 켜두면, 남들은 5초에 한 번 바뀌는 화면을 1초마다(초갱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기를 여러 대 들고 다니는 게 워낙 불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훗날 인성데이타가 ‘중복 로그인’을 막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집착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4. 과도기 2: 욕망이 만난 ‘신문물’, 가산동 ‘쓰리고’
소수의 기사들이 복제폰으로 씨름할 때, 대다수의 기사들을 홀린 진짜 ‘신문물’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시작된 상용 지지기 ‘쓰리고’였습니다.
기사들이 지지기에 열광한 건 무전기 시절부터 이어진 “남보다 편하게,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이름부터가 3분할 앱의 특징을 살린 ‘쓰리고’에서 따온 이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혁명이었습니다. 복잡하게 기계를 여러 대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최신 폰 하나만 있으면 해결됐으니까요.
놀라운 점은 당시 ‘쓰리고’의 기술력이었습니다. 아직 삼성이나 구글조차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완벽한 ‘화면 분할’을 지원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쓰리고 개발진은 OS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의 폰에 인성1과 인성2를 강제로 동시에 띄우는 기술을 구현해 냈습니다.
이 신문물을 접한 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산동으로 몰려갔습니다. 버젓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폰 결합 상품이나 월 사용료(5~8만 원)를 받는 구독 모델이 이때 정착되었습니다.
▲ 기사들의 ‘화면 분할’ 니즈를 파악한 인성데이타가 훗날 정식으로 출시한 ‘인성퀵화면분할’ 앱 화면.
[비하인드] 밤을 새워 만든 나만의 무기: ‘호박’과 ‘모트스크립트’
이 시기는 그야말로 혼돈이었습니다. 최신 안드로이드폰에 ‘쓰리고’를 까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옴니아를 고집하는 기사들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남들이 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살 때, 저는 오기가 생겨 직접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옴니아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호박’이라는 프로그램과 ‘모트스크립트(MortScript)’라는 자동화 언어가 제 무기였습니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정교했습니다.
- 호박(Hobak): 인성, 로지 같은 프로그램 창을 화면상의 특정 좌표(X, Y)에 강제로 고정 배치합니다.
- 모트스크립트: 제가 짠 코드가 해당 좌표를 감시하다가, 오더가 뜨면 0.01초 만에 자동으로 클릭하게 만듭니다.
▲ 제가 직접 세팅했던 옴니아 화면. ‘호박’을 이용해 인성(위)과 로지(아래)를 특정 좌표에 배치하고, 직접 짠 스크립트로 제어했다. 4개 플랫폼을 통합 관리했던 나만의 관제탑이었다.
저는 밤마다 잠을 줄여가며 코드를 짰고, 결국 인성, 로지, 손자, 예지 4대 플랫폼을 옴니아 폰 하나에서 통합 제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성능은 실로 강력했습니다. 최신 안드로이드폰에 비싼 돈을 주고 ‘쓰리고’를 깔았던 동료 기사가 제 스크립트의 성능을 보고는, 다시 구형 옴니아를 구해와서 세팅해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한동안 마음 맞는 동료 몇몇과 이 프로그램을 공유하며 ‘개발자’이자 ‘기사’로서 낭만적인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낭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화면을 보고 반응하는 저의 스크립트나 쓰리고 같은 방식은, 곧이어 등장한 ‘괴물’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화면에 글자가 뜨기도 전에 데이터를 가로채는 기술, 바로 ‘패킷’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5. 기술의 특이점: ‘퀵라이더 연대’와 패킷의 시작
안드로이드 지지기 업체들이 난립하던 중, 전설적인 한 업체가 등장하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이곳이 전설로 남은 이유는 비단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독특한 가입 방식’ 때문이었죠.
당시 다음(Daum) 카페의 ‘퀵라이더 연대’라는 유명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기묘하게도 이 카페 운영진과 지지기 업체가 연결되어 있었는지,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카페 가입’과 ‘가입 신청서(종이 서약서)’ 작성이 필수였습니다.
▲ 2013년경 촬영된 ‘퀵라이더연대’ 구동 화면.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분할 실행’ 버튼과 통합 UI가 돋보인다. 카페 가입이 필수였던 독특한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로고가 선명하다.
이 앱이 괴물이었던 이유는 바로 ‘패킷(Packet)’ 방식의 시초였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글자가 뜨기도 전에 서버 데이터를 가로채 수락해버리는 기술. “화면에 보이지도 않는 오더가 잡히는” 기현상이 이때 대중화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당시 일부 세력과 관련된 과거의 일이며, 현재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동명의 카페 운영진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6. 폭주하는 기술: 3대장(명작·히어로·제우스)과 좀비 추적
퀵라이더연대 지지기가 패킷의 문을 열었다면, 이후 등장한 ‘명작’, ‘히어로’, ‘제우스’는 기술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기사님들 사이에서는 전설의 3대장으로 불렸죠.
▲ 0.1초를 앞당기기 위한 세팅 전쟁. 도착지와 금액을 깨알같이 필터링하고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필수였다.
이들은 단순한 자동 수락을 넘어 악마 같은 기능 하나를 탑재했습니다. 바로 ‘백그라운드 무한 추적’입니다.
- 사용자가 거리·도착지·금액을 세팅하면 오더가 뜨자마자 1차로 낚아챕니다.
- 만약 밀려서 놓쳤다? 프로그램이 백그라운드에서 그 오더를 기억하고 초단위로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 누군가 취소하거나 튕겨 나오는 순간,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기계가 다시 낚아챕니다.
원래 앱은 3초에 한 번 서버와 신호를 주고받지만, 이 추적 기능이 켜지면 1초에 수십 번씩 서버에 “그 오더 내놔!”라고 요청을 보냈습니다. 사실상 오더를 싹쓸이하는 구조였죠.
7. 파국: “서버를 공격하라?” 소송전과 기능의 삭제
영원할 것 같았던 ‘명작’의 시대는 결국 1위 플랫폼사인 인성데이타의 대규모 소송전으로 막을 내립니다.
기사님들은 “너무 잘 잡아서 미운털 박힌 것”이라 생각했지만, 업계에서 보는 결정적인 소송 원인은 바로 앞서 말한 ‘좀비 추적(서버 과부하)’ 때문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기사가 동시에 추적을 돌리니, 인성데이타 서버 입장에서는 사실상 디도스(DDoS) 공격을 받는 것과 다름없는 부하가 걸렸던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이를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업무방해’로 판단했습니다. 가장 강력했던 ‘명작’ 개발자들은 구속되거나 실형을 선고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더 큰 영향은 그 이후였습니다. 인성데이타가 승소하자, 살아남은 다른 지지기 업체들도 핵심 기능인 ‘무한 추적’ 기능을 삭제하거나 막아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장에 ‘특별히 잘 찍히는 지지기’는 사라졌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의 성능이 하향 평준화된 것이죠.
8. 생존을 위한 멀티앱의 탄생
인성데이타는 원천적으로 지지기의 핵심 기능을 막아섰습니다. 시장에서 유독 오더를 잘 잡는 ‘특출난’ 지지기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사들은 지지기의 편리함과 최소한의 속도 우위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전에는 남들보다 더 벌기 위해 지지기를 썼지만,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쓴다.”
지지기 사용의 목적이 ‘경쟁’에서 ‘생존’으로 바뀐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의 힘이 평준화되자, 기계적인 성능이 아닌 ‘가상화된 물량’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바로 ‘N’과 ‘M’으로 대표되는 멀티 지지기입니다.
이들은 여러 대의 폰을 물리적으로 들고 다니는 대신, 하나의 폰에서 수십 개의 앱을 복제해 실행하는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예전의 ‘복제폰’이 기계를 여러 대 샀어야 했다면, 이제는 폰 하나 안에서 가상으로 수십 명의 기사가 대기하는 효과를 낸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시장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9. 현재: 비용 증가로 기사의 눈물
‘멀티 지지기’의 등장은 시장에 기묘한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과거처럼 창과 방패의 싸움이 치열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플랫폼사는 개별 기사들이 사용하는 계정 수가 늘어남에 따라 프로그램 사용료 수익이 증대되는, 구조적인 아이러니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사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한 기사가 감당해야 하는 월 고정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 인성 프로그램비: 폰 1대에 인성1, 2 두 개를 쓰는 데 월 33,000원(16,500원 x 2). 만약 12대의 폰 효과를 내기 위해 12개의 계정을 쓴다면, 월 396,000원이 됩니다.
- 지지기 프로그램비: 여기에 멀티 지지기 사용료로 월 약 200,000원이 추가됩니다.
- 총 고정비용: 한 달에 숨만 쉬어도 나가는 프로그램 비용만 약 60만 원에 육박합니다.
여기에 퀵사무실의 수수료도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사 수수료 550원만 받았지만, 지금은 하루에 통상 1,000원~1,500원을 받습니다. 차액은 고스란히 퀵사무실의 수입이 됩니다.
결국 ‘멀티앱’ 시대의 공생은 플랫폼사와 퀵사무실의 배를 불리고, 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눈물의 경쟁’이 되어버렸습니다.
[심층 분석] 그림자 속의 비즈니스 모델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지지기’가 유통되는 방식입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철저히 점조직으로 움직입니다.
- 개발자는 익명으로 남습니다. 핵심 기술을 가진 개발자는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 설치업자가 대리인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문자를 통해 “신형 지지기 출시”라고 홍보하고, 설치와 수금을 담당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처럼 사라집니다.
- 수익 구조: 기사들이 월 사용료를 입금하면 원격으로 사용 권한을 인증해줍니다.
단속의 위험은 분산시키면서 수익은 극대화하는 이 효율적인 음지 비즈니스 모델이 깨지지 않는 한, 지지기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글을 마치며
PDA 시절의 ‘투터치’부터 패킷, 그리고 지금의 ‘멀티앱’까지, 지난 20년의 역사를 돌아보니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지기의 역사는 결국 플랫폼과 지지기 개발자, 그리고 우리 기사들 사이에 벌어진, 끝나지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 그 자체였습니다. 플랫폼이 막으면 지지기는 뚫었고, 더 강력한 지지기가 나오면 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앞으로도 이 게임의 법칙은 계속해서 바뀔 겁니다. 또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에 적응하며 이 길 위에서 살아남겠죠.
결국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오늘도 도로 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든 동료 기사님들, 항상 안전이 우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