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비 입은 라이더와의 만남

20대 후반, 나는 시화공단에서 공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인문계를 나와 딱히 기술도 없었고, 친구를 따라 들어온 직장이었지만 적응하기 힘들었다. 기숙사 단체 생활도, 상사가 시키는 잡일도 내 옷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그 꿈은 잠시 접어둔 상태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공장 앞으로 검은 우비를 입은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거대한 짐대(짐받이)가 달린 VF125였다. 기사님은 짐대 옆에 달린 긴 쇠봉을 능숙하게 눕혀 오토바이를 고정했다.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 개조된, 마치 지게 작대기 같은 원리였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져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 이런 일은 어디 가면 할 수 있어요?”

그게 퀵서비스라는 것조차 모르고 던진, 내 인생을 바꾼 질문이었다.

#2. 왜소한 청년, VF125에 오르다

무작정 공장을 그만두고 생활정보지를 뒤졌다. ‘월 200만 원 보장, 기사 구함’. 그 길로 찾아간 퀵사무실 소장님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서울 길도 모르는 데다 체구마저 왜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다행히 신생 사무실이라 기사가 귀했던 덕분에 나는 가까스로 승낙을 받았다.

거금 70만 원을 들여 중고 VF125를 샀다. 짐대를 달고 나니 가뜩이나 작은 내가 더 작아 보였다. 그렇게 나의 퀵서비스 인생이 시작되었다.

#3. 첫 배달, 그리고 몸살

첫 오더는 남동공단행. 길을 모르니 선배 기사를 따라갔다 오라고 했다. 뒤이어 성남까지 꽁무니를 쫓아 다녀왔다. 고작 뒤따라 주행만 했을 뿐인데, 그날 밤 나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시골에서 신문 배달하며 타던 오토바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뻥 뚫린 시골길이 아니라,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심의 도로는 전쟁터 같았다. 긴장을 온몸으로 했던 탓이다.

다음 날부터는 홀로서기였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소장님이 종이에 그려준 약도 한 장과 두꺼운 지도책이 내 길잡이였다.

#4. 가장 느린데 가장 빠르다?

초보였던 나는 욕심을 낼 수 없었다. 다른 베테랑 기사들이 한 번에 3개, 많게는 7개씩 물건을 묶어서 나갈 때, 나는 딱 하나, ‘단건’만 받아 출발했다. 배달을 마치면 빈 차로 사무실에 복귀해 내 순번을 기다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명동의 나염 원단 업체들이 주 거래처였는데, 직원들이 유독 나만 찾는 것이었다.

“그 총각 보내줘요. 그 사람이 제일 빨라.”

사실 나는 겁이 많아 속도를 못 내는 ‘거북이’ 기사였다. 그런데 왜 가장 빠르다고 했을까? 다른 기사들은 물건을 여러 개 픽업하느라 30분, 1시간씩 사무실에서 지체하다 출발했지만, 나는 물건을 받자마자 곧장 달렸기 때문이다.

느리게 달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보다 빨랐던 나.

욕심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하나만 보고 달렸던 그 시절의 내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립다.